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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어느가족-이재정(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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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8-11-07 13:26 조회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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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가족이 바라 본 영화 <어느 가족> 그리고 나의 페미니즘

    이재정(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한부모가족에게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씨네토크는 그 질문을 던지고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가족에 대한 여러 고민을 남기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가족>을 바탕으로 영화에 대한 페미니즘 비평과 각자의 경험들을 엮어냈다. 패널로는 여성주의 영화를 만드는 강지이 감독, 페미니즘 시각으로 사회복지와 정책을 연구하는 정재훈 교수님이 함께 했다. 나는 한부모 자녀로 겪었던 경험과 고민을 나눠보았다.

 

한부모가족에 대한 이야기에서 자녀의 입장에서 논의된 것이 별로 없다는, 그렇기에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한국한부모연합 선생님의 말씀에 나 역시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눠보지 못했던 개인적 경험들을 풀어내리라 마음먹게 됐다.

 

페미니스트의 시각으로 바라본 <어느 가족>

사실 이 영화는 페미니즘 관점에서 비판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었기 때문일까. 비평글 자체도, 페미니즘 비평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씨네토크에서 패널과 관객이 함께 페미니즘 인식론으로 영화를 비판적으로 해석한 것은 그 자체로 큰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에 대한 여러 비판들을 차치하고, 이 영화는 가족의 의미에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동하고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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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했던 점은 원가족이든, 대안가족의 형태든 가족해체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린다는 점이다. 영화에선 부모의 방치와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린’이라는 여자아이가 어쩌다보니 새로운 가족을 만나 생활하게 되는 모습이 그려진다. 영화에서 린이 갈등을 겪거나 그 갈등으로 인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은 늘 여성이었다. 린이 다시 원가족으로 돌아가야 할 때, 아버지는 어딘가로 증발된 채 린과 어머니의 관계만 그려지는데, 이것은 즉 그동안 린의 원가족에서 벌어졌던 폭력과 갈등의 봉합을 어머니에게 떠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린의 어머니 역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음에도 말이다. 대안 가족의 붕괴하는 상황에서도 마지막에 죄의 책임을 모두 감당하는 것도, 가족에 대한 집요한 취조를 당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엄마라고 불렸나요?“ 질문을 받는 것도 ’엄마‘ 역할로 그려진 노부요였다. 결국 가족의 유지를 책임지는 것은 여성의 몫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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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시각은 한부모 가족에서 ‘엄마’를 바라보는 시각과도 맞닿아있다. ‘부’가 부재한 가족에 대해 가족해체의 원인을 ‘모’에게서 찾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부’의 부재는 ‘모’가 사회적 질타를 받는 이유가 된다. 사별한 여성은 ‘남편을 잡아먹은 재수 없는 여성’으로, 이혼한 여성은 ‘가족을 끝까지 지키지 않은 이기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아무리 한부모 가족이 많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이러한 편견은 남아있다는 것을 한부모 가족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대체로 공감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시선들은 가족관계에서 갈등이 있거나, 더 나아가 가정폭력이 발생해도 가족을 떠나지 못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한부모 가족의 어머니에 대한 편견은 가족 내에서도 작동하는데, 한부모 가족의 자녀 역시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을, ‘양쪽 부모의 사랑’을 물려주지 않은 책임을 엄마에게서 찾는다. 나 역시 엄마를 원망하며 보낸 시기가 있었고, 이런 감정을 내 안에서 소화해내는데, 그것이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식을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고, 밤에는 대학원을 다니며 일했던 엄마에게는 미운 감정이, 가족에 대한 모든 책임을 방기한 아빠에게는 측은지심을 느꼈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가족을 돌보고 지켜야 하는 존재인 엄마, 가정에서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인 아빠, 이 고정된 성역할은 여성에게 여러 삶의 무게를 더한다. 한부모 가족의 어머니는 여성으로서의 책임과 사회적 편견을 함께 견디며 가족 내외부에서 이중고를 겪게 된다.

 

페미니스트가 된 나의 <어느 가족>

나는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온전히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모녀관계는 자연스레 돈독해졌다. 나는 더 이상 많은 관계의 책임을 엄마에게 찾지 않는다. 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했던 존재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경험은 혼란스러웠던 지난날의 감정들을 해소시키는 계기가 됐다. 엄마의 책임으로 돌리던 나의 불행들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질문하게 됐다.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는지, ‘정상가족’에 대한 환상을 심어 넣는 사회와 사회적 편견 때문이지 않았는지 되묻게 됐다.

나에겐 ‘정상가족’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있었는데, 제대로 된 가족을 갖지 못했다는 생각에 ‘가족’이라는 문구만 봐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시기가 있었다. 남들이 나를 ‘결여된 존재’로 볼까 두려웠고,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하고 늘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엄마 역시 나에게 늘 미안함을 갖고 있었고, 엄마의 미안함이 나에겐 부담이 되기도 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엄마가 수많은 갈등 속에서도 가족관계를 붙들고 유지했다면 과연 내 삶이 더 행복해졌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가끔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들 때가 있다. ‘엄마의 부재’ 자체에서 오는 슬픔도 크지만, 법적 보호자인 엄마가 사라진 이후에 대한 걱정이 크다. 비혼의 삶을 그리고 있는 상황에서 법적 보호자인 엄마가 사라지면 내가 아프거나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불안함이 든다. 정신적·물리적 폭력을 가했던 오빠에게 연락할 것인지, 연락하지 않고 지내고 있는 아빠에게 연락할 것인지, 결혼을 해야 할지, 불안한 고민들이 이어진다.

함께 살지도, 관계를 유지하지도 않지만 ‘혈연’이라는 이유로 묶여져 끝나지 않고 종속된 이 관계, 과연 건강한 걸까? 혈연관계와 이성애 결혼제도로만 가족구성을 인정하는 폐쇄적인 한국사회에서 개인이 그릴 수 있는 삶의 모습이 얼마나 한정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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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힘들게 한 것은 사회의 시선이었다

나와 우리 가족의 모습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된 것은 외부의 질문과 사회의 시선이 개입되었을 때였다. 내가 살던 동네는 시골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존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동네 어른들은 늘 아버지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에서 일하는지를 집요하게 물었고, 그런 질문들은 나에겐 큰 부담이었다. 그 외에도 아빠나 엄마 둘 중 한 명이랑만 사는 애는 손들어보라던 국어 선생님이라든지,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애는 사귀기 꺼려진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든지, 이런 편견어린 말들이 내 삶에 질문되었을 때 비로소 내 가족이 ‘불완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직감적으로 한부모가족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게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빠는 다른 동네에서 일해요’, ‘아빠는 중국으로 장기간 출장을 갔어요’ 따위의 거짓말을 했다.

 

현실과 달리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린이 중요한 전환의 순간을 겪을 때마다 대안 가족 공동체의 일원들이 린의 의사를 물어준다는 것이었다. 원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은지, 아니면 새로운 공간에 남고 싶은지, 머리를 잘라도 되는지, 입고 왔던 옷을 태워도 되는지, 이름을 ‘린’이라 불러도 될지 등을 린에게 묻고, 그 아이의 감정을 살핀다. 건강한 관계유지를 위해서 당연한 일들이 현실 가족관계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가족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는 말들로 ‘의사 묻기’의 과정을 생략해버리거나 부모의 의지에 따라 결정을 내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영화 속 새로운 공동체에서 당연한 것이었던 ‘의견 묻기’가 공동체 외 인물들이 개입되면서 사라지는 과정은 꽤나 기분이 나빴다. 새롭게 만들어졌던 가족 공동체는 경찰이라는 공권력에 의해 찢어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경찰은 린에게 어떠한 의사도 묻지 않는다. 어느 가족과 지내고 싶은지 묻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공간에서 린이 어떤 것을 느꼈는지 조차 묻지 않는다. 결국 린과 노부요는 끝까지 재회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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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호칭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는데, 쇼타에게 아버지라고 불리고 싶어했던 오사무 정도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에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고정되지 않는다.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정도의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에 등장했던 “낳았다고 다 엄마가 되나요?”라는 질문처럼 정말 혈연으로만 이어졌다고 가족이 되는 걸까? 서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관계를 ‘혈연’이라는 이유로 묶어두는 것은 폭력이지 않을까. 오히려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각자의 역할 모델을 수행하고 서로에게 각자가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는 공동체가 더 건강한 관계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영화는 질문으로 남기고 있다.

 

한부모 가족이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경우보다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행복의 지표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부모 가족을 행복하지 않은 존재로 만드는 것은 그렇게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과 그 편견 하에 만들어진 ‘정상가족’을 중심으로 한 제도적 장치들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와 다양한 관계를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페미니즘이 가족에게 던지는 질문들

성인이 된 이후 청소년기를 함께 보낸 주변 친구들이 한부모 가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는 친구를 보면서 오랜 기간 말하지 못하고 숨겨왔을 생각에 안타까웠고, 대체 무엇이 우리를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게 만들었나 착잡했다. 서울에 올라오면서부터는 한부모 가족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이 나에겐 일종의 해방감이었는데, 혼자서만 세상 불행을 다 겪었다 생각하던 시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다양한 가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 가족에게 부정적 시선을 보내고 편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더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의 생각에 공감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상상하는 친구들을 만나고, 그런 친구들이 여럿 있는 커뮤니티를 갖게 되면서 여러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런 공동체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페미니즘이라는 인식론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내 삶에서 페미니즘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

 

페미니즘 인식론은 주체로 호명되지 않았던 여성들을 끊임없이 주체로써 호명하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눠 차별을 양산하는 권력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런 인식론은 개인의 삶을 가로막았던 여러 제약들을 극복해나가는 힘을 길러준다. 개인이 삶을 그리는 방식의 상상력을 넓히고, 선택의 폭을 확산한다. 페미니즘 인식론으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은 가족 외부를 남성에게 가족 내부를 여성에게 맡기는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자 가정의 붕괴를 여성의 책임으로 돌리는 잘못된 통념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에겐 가족을 사유하는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고 생활동반자법 등 다양한 가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다양한 가족에 대해 고민하게 해준 영화 <어느 가족>과 가족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끌어내준 ‘한국한부모연합’에게 큰 감사의 뜻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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